이번 추석 처럼 더운 추석은 처음인듯 합니다.
이맘때면 누렇게 벼가 익은 황금들판을 가로질러 고향집으로 향하던 어린 시절이 생각 납니다.
추석날 저녁이면 동네 친구들 모여서 어느 집 사랑방에 둘러앉아서
누구 네 집에서 단지 두껑에 퍼 온 밀주 원액에 물을 타서 막걸리 만들어 놓고
술을 마시던 기억이 납니다.
세수대야보다 크고 깊은 단지 두껑에 막걸리 가득 담아놓고 커다란 밥공기 하나 가져와서 술잔을 대신합니다.
한 친구가 술을 퍼서 마시고나면 오른쪽 친구에게 술을 퍼서 건네주고 그 오른쪽 친구가 마시고나면 다시
한 사발 퍼서 자기 오른쪽에 있는 친구에게 잔을 건넵니다.
고향 친구들 열 명쯤 사랑방에 가운데 술 독을 놓고 둘러앉아서 한 잔씩 마시는데 아무리 술을 독촉해도
내 차례가 오기전에는 술을 마실 수 없습니다.
잔 하나로 돌아가며 술을 마시기 때문입니다.
"야~ !!빨리 잔 비우고 잔 돌려! " 하고 소리쳐도 내 순서가 와야 술을 마시기 때문에
모든 친구가 술의 주량을 고르게 마시며 밤새도록 술 취하지 않고 이야기 하며 노래부르며 놀던 기억이 납니다.
위생상 문제가 아니라면 요즘에도 그런 술 문화가 너무 그립습니다.
한 참을 술을 마시다보면 동네 형빨들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서너살 위의 형들이 어찌어찌 알고 찾아오지요.
좁은 시골동네에서 우리 친구들이 누구네 집에서 모여서 술마시는지 찾기는 식은 죽 먹기 입니다.
그 때부터 술판은 개판이 되는 것이지요.
한 명 한 명 불러세워놓고 주먹질을 시작합니다.
표면상 명분은 '어느 한 집에서 밀주를 이 만큼 퍼가 버리면 어떻게 하냐' 는 거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명분이고
실상은 평소에 형들에게 인사를 잘 안했다거나 건방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동네 형들은 두 어시간 우리들을 두들겨 패고는 앞으로 잘 하라며 훈계하고는 지들끼리 나가서 다른데 가서 놉니다.
그래도 친구들은 아무도 불만이 없습니다.
족보를 따져보면 아재뻘이고 할아버지뻘이고 12촌 넘어도 한 집안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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