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혼자서 자전거 타고 서울까지 갔다왔던 그 때가 20대 초반이었습니다.
입영통지서를 받고 한 번 입영을 연기했더니 어정쩡하게 87년 11월 중순으로 다시 영장이 나왔습니다.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11월 중순까지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실컷 놀고 군대가야겠다 하던차에
먼저 군대간 친구 깜짝면회나 가야겠다 싶어 막노동(노가다)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마침 집 근처에 건물 뜯어내고 재 건축 공사를 하고 있더군요.
무작정 찾아가서 현장책임자에게 일하게 해달라고 사정했더니 일반인은 일당 이만원인데 대학생은
만오천원 쳐 준다 합니다.(당시 자장면 한 그릇 천원)
한 친구랑 둘이서 시작했는데 그 친구는 하루하고 몸살나서 못 하겠다하고 도망가고 저는 삼일을 일했습니다.
친구들에게 자전거 타고 서울 갔다 오겠다 했더니 친구들이 다들 무리라고 만류 합니다.
그럴수록 더 오기가 생기더군요.
한 친구에게는 자전거를 빌리고, 다른 친구에게는 텐트를 빌리고 산악부 서클에 있는 친구에게 코펠을 빌려달라했는데
그 친구가 코펠을 빌려줄듯 하더니 개인 사물이 아니라 못 빌려주겠다 하네요.
그래서 밥은 사먹는것으로 결정했습니다.
내가 빌린 그 A형텐트는 1인용이었는데 요즘것과 달리 바닥 없고 지붕만 있는 형태 입니다.
카메라, 메모장, 펜, 양초2개, 성냥, 이불대신 몸에 바를 물파스, 지도, 물통등을 챙겨서 친구들과 간단한 출정식을 가졌습니다.
부산대 앞에 맥주집에 만나서 대 낮에 맥주 한 잔씩 사주고나니 딸랑 3만원 남네요.
당시에 맥주집도 오전 11시쯤 문을 열고 장사 했었습니다.
설마 갔다오겠어? 중간에 포기할 거야 하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출발하면서 시계를 보니 낮12시 30분 입니다.
지도를 들고 좁은 2차선 가장자리로 패달을 밟고 가는데 옆으로 자동차들이 생생 달리니 위험한 상황이 많이 발생하더군요. 특히나 덕계지나서 울산가는길에...
포석정을 지나 오릉 가까이 오니 한 편으로 후회가 밀려옵니다.
내가 이 길을 왜 왔을까? 후회 하면서도.. 한편 친구들에게 서울까지 갔다오겠다 해놓고 중간에 포기하는것이 죽기보다
싫습니다. 점점 오기가 생깁니다.

대구 도청에 들러서 의경으로 근무하던 친구를 만나서 그 친구가 찍어준 사진.
어깨에 둘러메고 탔던 배낭이 너무 무거워 사진에서 보듯이 자전거 프레임에 메 달았습니다.
패달을 밟을 때 다리를 벌려서 밟아야 하므로 힘의 손실이 발생하고 조금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몸이 한 결 가볍고 가뿐해 집니다.
저녁 6시 무렵에 경주에 도착해서 친척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다음날 일찍, 아침도 사양하고 김천으로 출발합니다.
잠시 대구 도경에 들러 친구만나 차 한잔하고 갈 길이 멀어서 다시 길을 떠납니다.
김천에서는 직지사에 들러서 하룻밤 묵어갈 계획이었으나 막상 김천에 도착해보니 김천에서 직지사는 서울과 반대방향이고 거리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냥 시내에서 묵을 자리를 물색하기로 했습니다.
저녁은 근처 중국집에서 짬뽕 먹었는데 한 그릇 1500원인가 하더군요.
마침 아파트 공사장이 보입니다.
옛날 복도식 아파트는 층 마다 쓰레기 버리는 구멍이 있고 맨 밑에 쓰레기 모이는 곳이 있습니다.
그 쓰레기 모이는 곳에 들어가니 크기도 혼자 눕기에 적당합니다.
자전거 들여놓고 촛불켜서 그날 일지 기록하고 입구는 스티로폼으로 막고 온 몸에 물파스 바르고 텐트는 이불삼아 덮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6시반에 일어나서 짐을 챙겨서 다시 국도로 향합니다.
지나는 길에 수퍼마켓에 들러서 빵하나 우유하나를 사서 배낭에 넣고 가다가 어느 포도밭에 잠시 멈춰서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출발 합니다.
포도가 있으면 포도서리 좀 할까 했는데 이미 막 포도수확을 끝낸 직후 더군요.
왕복 이차선 국도 가장자리에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있고 바람은 솔~솔 불어오고 정말 아름다운 길이구나 하는 곳도 많았지만 추풍령은 대낮에도 음산하고 으스스한 기운이 있더군요.
령은 택리지에 보면 산등성이가 펑퍼짐한 곳이라 되어 있습니다.
상주를 지나면서 택리지의 내용이 생각납니다.
낙동강은 낙양의 동쪽에 있는 강이라는 말이고, 낙양은 상주의 옛지명이라 합니다.
신기하게도 추풍령을 넘자마자 사람들의 말씨가 달라지는데 조금전까지 김천에서 만난 사람의
경상도 사투리는 사라지고 충청도 말씨가 낯설게 다가옵니다.
아무튼 기어도 없는 자전거로 힘들게 고개를 지나면서 아름다운 풍경 사진들 많이 찍었는데 지금 찾을 수 가 없네요.
드디어 공포스럽던 그날밤은 천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아침 6시반에 김천을 출발해서 천안에 도착하니 저녁 8시 반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때 거봉포도를 저는 처음 봤습니다.
세상에 저렇게 큰 포도가 있다니....너무 먹고싶었지만 주머니 형편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그때 독립기념관이 막 개관했을 때 였는데 네온사인으로 장식해 놓은 불빛을 보면서 아~ 저게 독립기념관이구나 했던 기억이 납니다.
천안에서도 거봉이 눈에 아른거렸지만 수퍼에 가서 빵하나와 우유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천안 역 앞에 있는 수퍼마켓이었는데 주인 아저씨가 물어봅니다.
어디서 왔냐고... 부산에서 왔다고 하니까 자전거에 전기발통 달린거냐고 묻습니다.
저녁은 먹었고 잠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시내를 일단 돌아 봅니다.
마침 교회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아~~저기 가서 하룻밤 재워달라고 해야겠다 하고 교회를 들어갔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마침 중년여성 두 명이 나란히 걸어서 나옵니다.
그 두 분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저기 죄송한데요. 저는 자전거 여행하는 대학생인데 오늘 하룻밤만 좀 묵어갈 수 있을까요?"
그러자 첫 마디가
"도둑놈 아냐? " 하고는 지나쳐서 나가버립니다.
뭣이라 도둑놈??? 도둑놈?? 속으로 엄청 화가 나는데 그렇게 보일 수 도 있겠다 싶어서 참았습니다.
시커먼 상하의에 자전거로 달려와서 땀범벅인 얼굴에 먼지가 붙어 시커먼 얼굴을 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어쨌거나 그 후로 지금도 '교회' 말만 들어도 반감이 생기고 이가 갈립니다.
하는 수 없이 다른장소 찾다가 발견한 곳이 천안의 어느 초등학교 입니다.
학교 양쪽의 가게들은 이미 문을 닫았고 열려있는 교문안으로 들어가니 오른쪽에 큰 포플라타나스 나무가 있습니다.
왼쪽에는 화장실 건물과 교사가 길게 늘어서 있는데 교문안에 들어서자 사방이 깜깜하고 불 빛 하나 안 보입니다.
하늘에 별 만 몇 개가 총총이 떠 있고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만 들립니다.
집안에 제사가 있어서 그 전에 돌아가야 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왔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합니다.
그날은 그믐밤이었습니다.
한 참 눈에 익으니까 검정색 페인트를 칠한 목조건물 화장실이 건너편에 어렴풋이 보입니다.

대충 그리자면 위의 그림과 같습니다. 큰 나무밑에다 자전거를 기대놓고 양초에 불을 켜서 세워놓고
수첩을 꺼내서 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속옷만 입은채 온 몸에 물파스를 바릅니다.
근육피로를 풀 겸 후끈후끈한 파스로 인해서 한기를 방지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습니다.
다시 옷을 입고 텐트는 이불삼아 덮고 머리맡에만 폴대를 두 개 세워서 들리게 해놓고 잠자리에 들려고 누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11:30이 조금 지나고 있네요.
내일이면 드디서 서울에 입성하겠구나 하면서 잠을 재촉하는데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처음부터 들렸는데 못 느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눕고나서 들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목소리가 섞여서 들리는데 도저히 잠을 잘 수 가 없습니다.
게다가 화장실 쪽에서 나무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옵니다.
포플라타나스 나무밑에 켜 놓은 양초는 바람에 약하게 일렁거릴뿐 꺼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바람이 화장실 문을 열 정도로 세게 불고 있지는 않다는 이야기 입니다.
일어나서 귀를 기울여 봅니다.
분명히 나하고 20여 미터 떨어진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 입니다.
문은 계속 삐이~익 하고 소리를 내고 남녀 아이들의 소리는 계속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 또렸하지는 않습니다.
"에잇 근처에 애들 놀고 있나보다" 하고 다시 누웠습니다.
근데 아이들 웅성거리는 소리가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다시 일어나 귀를 기울여 봅니다.
분명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 입니다.
이 밤늦은 시간에 아이들이 화장실에서 그것도 불을 꺼놓고 놀고있다?
양초를 들고 한 번 가볼까? 하고 화장실쪽을 계속 주시하고 있는데 너무 무섭습니다.
아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도 무섭지만 바람이 없는데 나무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며 삐걱거리는 소리가 더 무섭네요.
순간적으로 너무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있다가는 무슨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짐을 챙겨서 빠져 나왔습니다.

근처에 마침 여인숙이 있네요.
여인숙 주인 아주머니께 양해를 구하니 자전거를 방안에 들여놓아도 된다고 합니다.
숙박비 5천원 지출하고 자전거를 여인숙 방안에 세워놓고 자리에 누우니 12시가 조금 지났습니다.
그제야 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옆방의 남녀소음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여튼 그 다음날 수원화성을 지나서 서울에 입성했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 친구 면회는 못 했습니다.
그 뒷얘기는 생략합니다.
요즘도 가끔 그 소리의 정체가 궁금해지고 만약 그 날 직접 화장실에 가봤더라면 무슨일이 생겼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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